그룹명/산이야기

Cool 한 여자~~

언덕위에 서서 2009. 1. 2. 15:44

http://blog.naver.com/elf_guy/90024921211

 

1.

오래 전 일이다. 20여년 전, 스물 서너살 때~~

정말, 꿈에도 그리워하던 한 여인이 있었다.

 

편지세대니, 한 잔 하고 숙소에 돌아오면 절절한 그리움을 맘껏 쏟아부어

두툼하게 편지 봉투를 채우고, 우표를 붙히고~~

다음 날 우체통에 넣곤 했다. 아마 100통이 넘을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은 담담한 답장( 안부편지보다 조금 나은)만 보내올 뿐

내 불타는  감정과는 영 먼 곳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4~5년 쯤 연락이 끊겼던 어느 날

"이젠 정말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만나보자 "하고 

그 여인의 근무처인 청평으로 찾아갔다.

 

그 여인은 다소 반가운듯, 또 어찌 보면 오랫만에 찾아 온 나를  예의상 만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밤 늦도록 그저 웃고만 있었다. ~

대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청평 유원지에서, 권하는 소주를 사양도 않고 받으면서~

 

경춘선 막차시간이 다가왔다.

오늘도 이렇게 뜨뜻미지근하게 돌아갈 수는 없다는 각오로

마침내  벼르고 벼르던 비수를 들이댔다.

 " 나~~ 만나는 사람있어!  물론 당신만큼 사랑하지는 않지만~~~

수십번  써 보낸 내 마음을 모를리 없을텐데 아직  당신은 분명한 답변이 없고 해서~"

 

하고 돌아왔다. 그때도 그녀는 그저 웃기만 했다. 담담하게~~~~

아니 어쩌면  Cooll하게.

 

2.

그간 내가 떨어 온 엄살 탓에

매번 내가 10월을 얼마나 혹독하게 앓아 내는지~ 님들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이번 10월은 특히 더하다.

병원에서 우울증 약 받아다 먹으며 견디고 있으니까~~

우울증, 불안장애, 거기다 술 때문에 수전증도 온 듯하다.

 

자신감은 사람을 젊게 만들고, 두려움은 반대로 사람을 늙게 만든다고 하던가?

솔찍히 많이 두렵고 불안하다. 설악산도, 비행도,

산불조심이라고 적힌 깃발을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도 내 가슴을 옥죄인다.

 

두려움은 나를 더 나이들게 하고,  더 왜소해지게 만드는 듯하다.

 

자신감이 없다는 사실은 주변이 더 빨리 알아챈다.

그리고 태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동안 함부로 대하지 못하던 인간들까지 합세해서~

그래서, 이번 10월은 더 고통스러웠다.

 

3.

TV며 매스컴에 보도되는 내용을 보니  매일 참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는 걸  알게 됐다.

 

장안동 안마시술소 사람들, 주식하던  사람들, 농부들~~

왜 이렇게 죽는 사람 얘기가 눈에 잘 띄이는지?

불현듯 겁이나 주변에 있는 끈이며 철사를 다 치워버린다.

 

그러고 보니, 받지 말아야 할 돈 받아 먹은 공무원, 공기업 인사들, 의원들이

검찰에 불려가는 소식도 뻔찔나게 보도된다.

 

4.

내가 그렇게 힘들어 하니, 매일 일에 치여 사는 집사람도   힘들 것이 분명하건만

담담하게 자기 할 일하고, 애들 챙기고,

양양에 밀려 내려가 있는 남편에게 아침, 저녁 전화하는 걸 거르지 않는다.

고맙고, 미안했다.

 

엊저녁, 일 때문에 광주에 내려가 있는 아내의 전화를 받다

끝내 목이 메여와, "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하고 말했다. 

"사랑해~"라는 말을 해본지 얼마인지~~~

 

"본인이 더 힘들겠지, 힘 내~~"하는 답변에

아내가 누나같이 느껴졌다.

 

그러고 나자 

 " 그래, 나나 너희 놈들이나 다 국가에 고용된 노동자고, 내가 돈 받아 먹은 거 없는데

누가 일방적으로 옳고 그르고가 있겠냐? 시간이 흐른 다음에 보자.

나도 끝까지 여기 남아 처자식 먹여 살려야겠다~~"라는 오기가 생겨났다.

 

그렇게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술 안마신지도 2주쯤 되어 간다.

 

5.

얼마 후에 

그 옛날, 청평에서 내가 내지른 비수에도 담담한 미소만 짓던 

그 여인네의  뒷 얘기를 듣게 되었는데~

 

나를 보내고, 밤새 뒤척이다

다음 날 아침~~

그간 모아놨던  편지를 뒤뜰에서 태웠단다.

한장, 한장 다시 읽어보며~

 

당시

그 여인네 주변을 맴돌던  꽃미남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새, 그 자리에 다가와 눈치를 살피다간,

" 이중위님, 그 빈 자리에 제가 들어가면 안되겠어요?" 하더란다.

(야비한 놈~~ㅋㅋ)

 

내가 준비한 비수가 그녀에게도 역시 날카로운 칼날이였던가 보다.

 

그때나 지금이나 ~

둔한 내가 그 여인네의 여린 속내를 제대로 살필 줄 몰라서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