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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나무가 산을 지킨다.

언덕위에 서서 2008. 1. 12. 12:21
굽은 나무가 산을 지킨다.
글쓴이: 비탈길 조회수 : 19 08.01.10 17:17 http://cafe.daum.net/kwmut/AmX9/1706 주소 복사


1.
장인, 장모님 두 분 다 거동이 불편해 지시니
6남매 중 누구도 선뜻 자기집으로 모시겠단 소리를 못하고~

요양병원으로, 노인병원으로, 서울로, 춘천으로, 문막으로 돌고 돌길 1년여~

어느 날, 4째 처제가 대전으로 모시고 갔다.
부부 교사인 동서가 속이 좋아,
노인네들 오시자, 얼른 서재로 쓰던 큰방 내 드리고, 위층으로 옮겼다.

학기중에는 주말부부로 지내는 터라, 그럭저럭 두 세대(3세대구나) 가
한 집에서 지낼만 했나 본데~~
방학을 맞아 사위가 집에 오자, 장모님이 견디기 어려워지셨다.

견디다, 견디다 더는 못 견디게 된 장모님이 어느 날,
방학 동안만 노인네들 집이 있는 원주에서 지내시겠다고 털어 놓았고~
그로 인해 머리 굵은 자식들이 또 한 동안 옥신각신.

하지만 장모님 고집도 보통 고집이 아닌지라~ 끝내 당신의 의사를 관철하셨다.

자식들 입장에서는, 또 다시 두 곳으로 나뉜 노인네들 수발에 더 번거로워 졌지만~


2.
큰놈 성적이 나왔다.
저번 학기엔 "F"가 2개 이더니, 이번엔 한개다.

일본어 회화인가는 A+ 다.

"F"는 "F"고 ~~ "A+" 있다고 입이 귀에 가서 걸리는 녀석을 보고~
웃어야 할지, 어째야 할지 난감해졌다.

방학때면, 하루의 대부분을 컴퓨터 앞에 붙어있는 녀석이다보니
게임을 할때, 잽싸게 돌아가는 컴퓨터를 갖는게 일생일대의 바램이다.

이번 겨울방학 때, 알바를 해서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시키겠다는 계획인데~
이녀석 정체를 아는 한, 누가 알바를 시켜주겠는가 ?

아무리 궁리 해봐도, 이 신체 건강한 녀석에게 돌아 올 알바자리는 하나도 없다.

컴퓨터에 대한 녀석의 불평이 점점 커져가던 날.
묘책이 떠 올랐다.


3.
"너 어릴 때, 외할머니가 키워주신 것 알고 있지?
네~~
할머니가 이제 나이가 드셔서 혼자서는 거동이 어려운 걸 알고 있지?
네~~

방학동안 네가 할머니 모시고 있으며
밥도 하고, 청소, 빨래도 하고~
또 할머니한테 일본어도 배우면 어떻겠니?

하루에 1만원, 알바비 주마~~~

글쎄요? 그럼 자전거 가져가서, 장도 보고, 할머니 심부름도 해야 겠네요?
그럼 더 바랄게 없지~~~"

그렇게 할머니와 지내기 시작한지 어언 2주째다.

지난 주말엔, 몇가지 물건들 챙기러 왔다 가며
"집에 오는 꿈도 꾸고, 고양이도 보고 싶고,어쩌고 ~" 하면서도

여즉 잘 지내고 있다.


4.
이녀석 아니었으면, 정말이지 어쩔뻔 했나~~?

지난주에 가보니,
6남매를 전부 우등생으로 키워낸 장모님 극성이 통째로
손자녀석에게 쏟아져서 인가?
일본어가 제법 늘었다.

간혹 "할머니 극성에 내가 미쳐~~~" 하는 소리에 한바탕 웃어 가며

할머니고 손자고, 하루 종일 할 일이 있어 참 다행이고
그걸 보는 6남매 곱하기 1~4명의 맘이 모두 편하고 대견하다.

다만,
순간 순간 정신을 놓아 버리는 영감님 생각에
수시로 4째 딸네 집으로 맘이 가는 장모님이야 꼭 그렇지도 않겠지만~

하여간
이 녀석, 굽은 나무 같은 녀석이, 올 겨울 노인네 곁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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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외손주 덕을 많이 보고 계시는군요. 연세가 있으시니 혼자계신다는것도 걱정인데 태영(형)이가 옆에 있으니...... 그렇게 발심을 하는 선배님도 대단하시구요. 잘계시죠? 요즘은 출동이 없으신가요? 동계산행중 가끔...... 08.01.10 17:56
네~~ 년초에 몇 번씩은 산에 불려 가는게 일상인데, 올해는 좀 뜸하네요. 덕분에 얼굴 표정이 좀 나아졌단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만~~ 세상이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인가 봅니다. , 대문만 열리면 쏜살같이 내 뛰던 어린 손자 간수하느라, 그 집 대문 높은 곳에 설치한 잠금쇠가 아직도 달려 있는데~~~ 이젠 그 잠금쇠 높이보다 키가 큰 손자녀석이 할머니를 돌보고 있으니~~~ 08.01.10 22:23

대견스럽죠 할머니도 외손자와 잇는 시간이 행복하실거예요 함께해야 정도 더 들더라구요 아이들교육엔 어른이 최고이데 더욱 성숙해져 온것 갖네요 비탈길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존경이란말이 저절로나와요 ^^* 08.01.10 20:29
네, 행복하신 것 같긴한데~~~ 공부 안한다고 성화가 있는대로 나셨더군요. 아무려면 즈 엄마만큼이야 하겠습니까만~~~? 08.01.10 22:26

자식 가르침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공자님 말씀 중에 몸으로 가르치니 따르더라 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가정의 화목이 최상의 행복이지요. 참 아름답습니다!!~~ 08.01.10 22:18
감사합니다. 엄마, 아빠 맘 편하려 짜낸 생각입니다. 그 녀석만이 시간이 남아 도는 녀석이라~~ 다행이 할머니가 지 어릴 때 고생하며 키워준 걸 기억하고 있어서~~ 인터넷도 안되는 할머니집에서 버티고 있나 봅니다. new 08.01.11 00:17

바른생각의 비탈길님곁에 바른생각의 아드님 계시네요..화목한가정입니다..넘 부럽고 좋으네요.. new 08.01.11 15:04
뭐랄까~ 제가 그저 생각만 바른 척할뿐, 행동은 거길 못 따라 가는데~~ 그런 척 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느 집이라고 부럽고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지겹고 짜증나는 일 중에 한가지라도 웃음소리 날 만한 일 있으면 이래저래 다듬고 과장해 글로 만드는 것이지요~~`구슬님도 찾아 보십시요. 젊음 삶이니 더 많을 겁니다~~ new 08.01.11 2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