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위에 서서 2007. 4. 15. 18:06

1.
초임 조종사 시절(1980년도다).
비행임무 편성되면 자다가도 일어나 쫒아갈 판인데, 고참들은 무슨 핑게가 그리도
많은지 툭하면 비행을 안했다. 내가 보기엔 멀쩡한 것 같은데, 비행기에 오일만 조금
비쳐도, 정비사 불러 검사하고, 비행중, 저 앞쪽 하늘이 뿌옇기만해도 좌,우측을 번갈아
보며 긴장하는 표정이었고(적어도 햇병아리인 내 눈에는), 무슨 날이라 안되고,
무슨 날이라서 특히 조심해야하고~~~가 엄청 많았다.

그 중의 하나가 13th Friday(13일 금요일) 였다.
80년대엔, 그 날을 영내 휴무일로 정해, 비행훈련대신 운동경기로 대체 했는데,
그게 육,해,공군을 망라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엔 미육군항공학교를 다녀와야 비행교관의 권위가 서던 시절이었는데,
그 교관들이 미국사람들처럼, 13th Friday에는 비행을 하지 않으려 했고,
지휘관들도 그런 찜찜한 기분으로 굳이 비행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관행이 되고 불문율화됐다.

빨리 비행시간 늘려 정조종사 되고 싶은, 나같은 쫄병들한테는 아쉬운 날들이었지만~~


2.
그 후, 10년쯤 지나자, 13th Friday를 입에 올리는 것이 좀 쑥스러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물론 고참들 중엔 언뜻 그 얘길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젊은 조종사들은 그 말에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기독교식, 서양식 미신이라며 무시하는 발언도 들렸고~~~

그런데 대충 중고참이 된 나는, 그 친구들처럼 말할 수가 없었다. 몇 번의 아찔했던 순간을
겪으면서, 이미 비행이 사람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된 터라,
어떤 금기도 거스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보신탕이나 산짐승 고기는 절대 안 먹었고, 외상거래하지 않았고, 항상 깨끗한 내의
입으려 결벽을 떨었다. 바야흐로 기상이, 자연이 얼마나 무서운지 조금씩 알게되던
시기였다.


3.
2007. 4.13 금요일
이제 조종사로 살아온 지 27년째다. 그 동안 나는 점점 더 노회해져서, 햇병아리 시절에
내가 흉봤던 고참들보다 더 소심하고 조심스러워졌다. Taboo도 더 많아 졌다.

가령, TV나 영화에 나오는 헬기들은(에어 울프만 빼고) 멋지게 비행하다 결국엔 불꽃을
뿜으며 추락하는 것이 통상의 시나리오인데, 나는 그런 장면도 잘 보질 않는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나오는 "항공사고 수사대"도 가능한한 보지 않으려 한다.
평소에 하도 신경을 써서 완전히 질려버린 화두인데, 또 다시 그런 정보를 내 뇌리에
입력시키기 싫기 때문이다.

그런 아빠 맘을 알리 없는 큰 녀석이 아침에,"13일의 금요일은 불행이 찻아 오는 날"
이라며 모두 조심해야 한다는 둥~~ 중얼 거린다.

저 녀석은 어디서 그런 얘길 들었는가? 하긴 워낙 엉뚱한 녀석이니.

다행이 오늘은 바람도 불고, 시정도 나빠, 누가 봐도 비행이 불가능한 날씨라
맘이 놓인다.
13th Friday를 이해시키기야 불가능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날씨가 이런 것은
누구나 금방 알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