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남의 집 방문하기
언덕위에 서서
2006. 3. 22. 15:49
1.
87년. 석사 논문 쓰던 무렵이었던 것 같다.
당시 약혼녀 신분인 아내와 함께 지도교수댁에
인사드리러 간 일이있다.
군에서 윗사람댁 방문한다는 건 뭔가 아쉬운 소리를 하러 간다는
(예를 들면 근무평정, 진급서열, 표창 등) 의미의 또다른 표현이지만
그 때는 정말 단순한 인사차였다.
(국방대학원이라 교수도 현역이었다)
강의실에서 모일 몇시에 누구와 함께 방문해 인사올리겠다고 말씀 드린 후
다소 저어하는 표정의 약혼녀를 대동하고 그 집 현관벨을 눌렀다.
아마 휴일 오전이었던 것 같은데~~
중고생으로 보이는 딸아이가 문을 열어 준다.
그리고 그 순간 이거 뭔가 잘못됐구나!하는 느낌이 왔다.
아빠는 외출중이라 하고,
싱크대에서 등을 보이고 서있는 안주인의 차림새도
손님을 맞을 차림이 아니다.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니 딸아이가 망설이는 눈빛으로 엄마쪽을 돌아본다.
그때 거실을 건너 우리 귀를 때리는 쇳소리~~
"아무개야, 엄마 지금 손님 맞을 준비 안됐으니 돌아가시라 캐라~~"
빈손으로 가진 않았을테고 뭔가 하나 챙겨 갔을텐데
그것도 그냥 들고 나왔던 것 같다.
돌아 나오며, 약혼녀쪽으로 시선도 못주고 전전긍긍하는데
한참 후, 마눌이 꾹 누르고 있던 한마디를 했다.
"못 배운 사람같으니~~"
다음 번 교수를 만나 얘기하니 "깜빡"했단다.
얼마 후,
사은회 때 다시 만난 부인이 말하는 폼새를 보니
주말에 손님 맞기 어려우니, 오지 않도록 하라는 걸
이 양반이 깜빡 잊고 연락하지 않은 듯 했다.
2.
세월이 흘러 나이드니
1년 가야 몇번 되지는 않지만, 그 때와 반대의 입장이 되어
손님을 맞아야 할 경우가 생기곤 한다.
가능한 이런저런 핑게로 만나지 않지만
(실제로 그렇다. 마눌은 맨날 집을 비우지, 아들 놈들이 온통 어질러 놓지,
돼지우리 같은 분위기라 손님 맞을 상황이 전혀 아니다)
기습적으로 손님을 맞을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그때는 최대한 친절하게 맞는다.
20년 쯤 전, 둘이 함께 겪었던 모멸감이 떠올라서~~
방문객이 뭔가 챙겨오면 아주 감사히 받는다.
집들이 선물 받듯이~~
그리고 그런 경우에 대비해 평소에 포장된 선물 몇개는 준비해 놓는다.
집에 왔던 사람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3.
사람 모집한다하니,
가까이 근무하면서도 얼굴한번 제대로 들이밀지 않던 젊은 친구가
전화를 넣었다.
충청도 집에 내려와 있는데, 한번 올라가 뵙겠다고~~
채용시 필요한 사항 물어 메모해 두고,
올라오겠다는 걸, 모집 공고나면 연락하마하고 끊었다.
내 의도대로 사람을 뽑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직접 만나면 오히려 내가 이상한 눈길 받게 된다고
두번, 세번 분명히 다짐을 받고~~~~
저녁에 다시 전화가 왔다.
춘천에 올라왔는데 숙소에 들러 뵙고 가겠다한다.
"이 사람아! 어찌그리 말귀를 못 알아들어,
일 망칠려 그래? 그냥 내려가~"
따금하게 한마디하곤, 냉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니 내가 옛날 그 교수마눌꼴이 되고만 것 같아
영~~ 찝찝하다.
다행히 그 이후로도 가끔 안부 전화가 와
마음은 다소 놓이지만,
4.
벌써 사는 방식이 서구화되어 그런가?
남의 집 방문하기도 상당히 조심스럽고
집으로 누구를 초대하기도 싫다.
그러다 보니,
멀리 돌려, 오지말라는 소리를 하게 되는데,
그 말이 뭔말인지 못 알아 듣거나, 막무가내인 친구들은
그 옛날 나처럼(?) 불시에 쳐들어 오기도 한다.
그걸 어쩌겠는가? 아직 세상을 덜 살아서 그런 걸~~
하여간 그 친구와 좋은 인연이 되어
나중에 이 글을 읽게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옛날 내 경우와는 다른 절실한 상황에서 올라왔으니
더 깊게 상처 받았을 텐데~~~~~~~~~~~~~~~~~
(글 쓰다 중간에 엉뚱한 일 생겨, 한참 후에 다시 쓰니
아무리 고쳐도 맥이 끊겨 영~~ 이상하다.
중간에 읽어 주신 분들께 사과 말씀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