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2-84년
19840529
京은 벽처럼 있기만(有) 할뿐이고
나는 언제나 초조한 상태로, 너무 오랜 시간을 지냈기 때문에
뭐라 이제와는 조금 달라진 현재의 상태를 제대로 표현 할 수 없을 것 같다.
뉘게고 감사할 때인 것 같고 녀석(2번)의 표현을 빌면 “ 넋 나간 상태(Be in sane) " 란다.
이런 상태에서 어떤 논리나, 일목요연한 감정의 서술을 기대하기란 괴로운 일이다. 그냥 미친 놈 시중들 듯, 하는 대로 맡기고 바라볼 뿐이다. 큰 일이나 저지르지 않도록 기원하면서.
왜, 내가 惡手를 두는 거냐?
돌을 놓을 때까지는 나는 건전했고,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 정한 장소이기 때문에 돌의 위치는 정확하다. 그곳에 회의를 같게 된다면, 세상 전부에 대해 회의하고 근본적인 개념마저 흔들리고 뒤죽박죽이 되어 견딜 수 없다.
현재 내가 원하고 있는 유일한 사실은 -이게 이즈음의 내 생활의 온통이기도 하지만- 함께 있고 싶다는 것, 가까이 있고 싶다는 것뿐이다.
京이라는 여자는
그냥 생각만 하고 머리에 떠올리기만 해도
신선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여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되풀이 생각하고
그 목소릴 떠올리고 해도 도대체 피곤하질 않다.
‘ 풍덩’ 빠져서 끊임없이 허우적거린다.
무심코 지나는 사람들에겐 어떤 꼴로 보일지 모르지만
하여간 내겐 환상 속에 있는 거고
싱그러운 냄새만 느껴질 뿐이다.
누구의 죄냐?
다 내게로 보내라, 모두 책임질 테니까.
야유회에서 받은 수모에 대해서는 만나서 얘길 해야 할 것 같고
지금은 Booth에 갇혀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교관이 자꾸 눈총을 주기 때문에 이 편지 전체를 영역해서 모두 앞에서 읽어내야 한다. -영문편지의 초안이라 대답했기 땜에-
지금 차례차례 자기 소개를 하고 있는데 내 차례가 되면 “My Favorite Lady"란 제목으로 경희 얘길 해야겠다. 제대로 될지는 모르지만...
솔직히 얘기해서 목요일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서울과 조치원간의 1시간 40분의 거리가 얼마나 멀게 느껴지는가를 알기 위해선 나처럼 서울에 애인을 두고 조치원에 살아본 사람들 중에서
나만큼 미친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상은 미친놈이 겨우겨우 자신을 자제하면서 쓴 글이라 일관된 Story가 없는 글이다. 그냥 진실만 있을 뿐이다.
5월29일
19840605
어떤 경우에 어떤 이유로 여자는 남자에게 올 수 있는가?
1. 일방적(一方的)으로 그 남자에 반해서 자의적으로 그에게 올 경우-
상대의 능력, 장래성이나 가족 등에 관해 헤아릴 여유조차 없이 그의 외모, 또는 행동의 어떤 한 부분을 확대하여 느끼고 망설임 없이 다가온다.
자신이 반한 면 외에 다른 조건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 감정을 느낀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남자 건 여자 건-
여자라는 의식과 특히나 동양적인 관습 때문에 실제는 이런 자발적, 능동 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외모, 또는 그의 행동의 어느 한 부분이라 말했는데, 여기는 그 남자의
인간성이라거나 숨겨져 있는 어떤 가능성을 그 대상으로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2. 남자가 먼저 호의를 표시하고 여자측도 그런 남자에게 일종의 매력을
느껴 의기투합으로 어떤 관계가 진행되기 시작한 경우-
이 경우 여자는 최초에 매우 유리한 입장이다.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 그 제의(?)를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예의상(?) 처음엔 거절의 표시를 하지만 동시에 장차 어떤 가능성에 대한 표시를 잊지 않는다. 싫지만, 정말 싫은지 어떤지를 확실히 결정짓기 어려운 상태가 발생하는 게 통례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 시작이 남자에 의해 이루어 졌듯이 그 진행에 있어서도 남자의 ‘열의’와 여자에 대한 ‘관심’의 크기에 의해 결국엔 남자가 주도적인 입장에 처할 수 있다고 본다.
3. 제3의 요인, 주위 사람들이나 환경, 또는 어떤 돌발적인 사건
- 두사람 모두가 관련된 -에 의해 어떤 Initiative가 주어지고, 남자, 여자의 일방에서, 또는 둘 모두의 비슷한 열망에 의해 두 사람의 관계가 장차의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한다. 이 경우 주위 사람들의 관심, 체면,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 등에 의해 처음엔 둘 모두가 강요된 배역을 연기하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으며, 종래 까지 그런 식으로 진행되거나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점차 둘만의 우주를 형성하기 시작하고, 늦게 야 열중하게 되거나, 또다른 경우, 결국은 “ 이게 아닌데...”라는 의식을 하게 되면서 바람직하지 못한 Epilogue를 맞게 되기도 한다.
이상이 기본적인 형식이라 하고
여기서부터 비롯되는 여러 가지의 Variation을 상상할 수 있다. 3! 또는 3!의 2회, 3회 반복, Variation에서 또 !을 모두 기술할 수는 없다.
- Variation의 한 예 -
“ 한 남자”와의 관계에서 어떤 부족함을 느낀다.
남자가 부족하거나 아니면 여자 측이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경우이다.
그래서 한 옆에 밀어 두었던 남자 - 너무 오래 보아 왔기 때문에 그의 장, 단점을 모두 외우고 있고, 새로운 사람을 볼 때처럼 냉정하게 그런 면을 평가할 수가 없다.-에게로 갈 수도 있다.
어떤 연민-사랑의 감정은 아니더라도-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야말로 그녀가 Steady하게 예비해 두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그를 그녀의 가슴 속 어두운 곳에 숨겨놓고 의식적으로는 비어있다고 고집해 왔으나 실제는 뭔가가 “존재”한다는 걸 묵인하고, 그로 인해 어떤 여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에게로 온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이는 다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과도 연관지어 지며, 결국 ‘산다’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산다는 것’- 이에 대해선 아직 어떻게 상상을 해 볼 수가 없다. 후에 다시 정리가 된 다음 써야 될 것이다.
다만 “어떻게 대해 주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그냥, 벌거벗은 채로, 차라리 못난 면, 허둥대는 꼴을 먼저 다 내보이고, 이런 면을 보상해 주리라고... 그렇게 대해야 하리라는 것.
무척 나만 편하고 이기적인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꾸미지 않고 대할 수 있다는 이유가 또한 무척 “인간적”인 자세라 사려된다 .
인간적이라 해서 이제까지는 神처럼 살았다는 얘긴 결코 아니다.
틀린 공식에 변수를 대입하여 答을 구하는 멍청함을 범하고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 ‘지배적인 생각’이 유일한 정답인 경우 오늘( 6.5 ) 오후 네시간은 완전히 손해본 生이다.
그래도 내일이면 우리 “못냄이 + 웃냄이” 아가씨를 볼 수있다는 사실에
-그 생각에- 빙긋 웃는다.
참,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웃음이다. 온달 같은...
84.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