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위에 서서 2006. 1. 2. 16:03
 

19770330    간호학교 3학년

광수.

누구에 겐가 하고 싶은 얘기 할 수 있고, 쓸 수 있다는 건

아직은 조그만 내가 남아있다는 것 일거야.

편지 한 장  쓸 마음의 여유조차도 잃어가면서

하루들에 쫓기는 경희가 불쌍히 여겨지진 않는지?


3월의 주일은 몽땅 행여나? 하는 맘으로 보내버린 것 같은데

손해배상 청구는 뉘 앞으로 해야 될까?

하지만 내가 잔뜩 벼르는 가배 ( → coffee shop ) 커피 대접의 기회가

아직은 여덟 달쯤 남아 있다는 데 또 다른 기대를 걸어보기로 하고.


8일 까진 우리나 거기나 마찬가지겠지.

요즘 좀 살벌해.

어젠 아버지, 엄마께서 딸 만나시겠다고 이 먼 곳까지 오셨다

그냥 가셨다는 군.

몰랐더라면 차라리 괜찮았을지도  모르는 데 어떻게 해서 내게 알려졌고

이미 가버린 분들 목놓아 운다고 붙들 수도 없고....

자신이나 부모. 형제보다는 더 커다란 국가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당연하면서도 엄청난 사실에 따르는 조그만 슬픔이었지.

군기 빠졌다고 또 한마디 할 테야? (제발 참아 주시도록 )

이제 스물 한 살이 채 못된 여자 애에게

활동 범위가 국한되고 사고의 범위까지도 제한된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

나의 가냘픈 이 정신이나마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느끼면서

살고 싶어 택했던 시작부터가 잘못된 것이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언젠가는 또 이런 날들을 생각하며 웃게 될 지도 모르고

어쨌든 긍정자가 되고 싶어.

부정자가 된다는 건 내가 감당 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고 쓸쓸한 길인 것 같아서.

모든 게 내 의지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지만.

삶이라는 자체부터가 내게 주어진 것이지 내가 택한 건 아니잖아.

절대자께서 엮으신 각본에 나의 역은 아주 슬프고 역겨운 역일지도,

아니면 아주 희역 일 수도 있지.

그 역이 마음에 안 든다고 내가 배역을 바꿀 순 없는 거구.

그 것이 어떤 역이든, 나에게 맡겨진 대로 충실히 해 나갈 때

나의 삶을 사는 것 같애.


문득

비가 조금씩 내리는, 많은 사람들이 춤추듯이 밀려다니는

거리에 나가보고 싶어지는데....?

눈물과 춤과는 얼마나 멀고, 얼만큼 가까운 것인지?

그만 쓸래

몸과 마음이 항상 건강한 광수이기를 하느님께 기도 드려 줄게.       

                     77. 3. 30

                          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