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구조일지
새해 첫 날 (2005. 1. 1. 14:00)
치악산 비로봉에 하체마비 산행객, 구조 출동할 것.
비로봉에 착륙하기 위해 속도를 줄이면서
외기 온도계를 보니 영하 20도 다.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어 체감 온도는 충분히 영하 30도를
밑돌 것 같다.
50대 부부가 같이 등산을 하던 중 남편에게 하체 마비가 와서 걷지를 못하고 있다.
새해 맞이하러 산에 올랐다 마나님 앞에서 모진 일 당하고 있는 것이다.
헬기에 탑승한 후 원주까지 이송하는 동안,
부인은 민망스러워(새해 첫날 119헬기 타는 심정이 어땠겠는가?)
이런 저런 얘길 하는데~~ 남편은 有口無言이다.
기내에서 구조대원들이 계속 마사지를 하고 히터를 최대로 튼 덕에
뭉친 근육이 다소 풀리는 듯 남편의 표정이 좀 전과는 달라진다.
원주천변에 착륙하여 대기중인 구급차에 인계후 임무종료.
1월 4일. 15:00
설악산 비선대 형제폭포, 빙벽타다 추락한 요구조자. 구조출동.
서울 모 산악회 소속, 30대
오늘도 역시 체감온도는 영하 30도 내외~~
헬기를 빙벽에 바짝 붙여야 부상자를 끌어 올리겠는데
오후 시간대라 서산의 겨울 해가 정면에서 비치니~~
장님 코끼리 더듬는게 이런 식이지 싶다.
그늘진 벼랑은 원근이 전혀 구분되지 않아
헬기가 계곡의 굽은 모퉁이를 제대로 돌아가는지, 바위 모서리를 향해 가는지
그저 더듬더듬 나아간다.
현장에 도착하여, 로타끝과 빙벽사이가 1~2m되는 지역에서 20 여분 하바링.
구조대원이 내려가고, 들것이 내려가고, 응급처치 후 들것이 올라오고
겨우겨우 또 한건의 구조작업이 완료된다.
병원 이송 후 부상정도 확인하니 골반뼈 복합골절.
1월 9일. 14:30
운두령 일대 다수 요구조자. 골절 및 저체온증. 구조출동
운두령은 홍천군 서석면에서 진부로 넘어가는 국도 중간에 있다.
북동쪽으로는 계방산과 오대산이고
서쪽으론 모래산 지나 태기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있는.
오늘도 외기온도를 살펴보니 영하 15도, 바람세기로 보아
체감온도는 역시 영하 20도는 충분할 듯~~
1차로 모래산에서 발목 부상 50대 남자를 구조했는데
대퇴부와 정강이가 완전히 어긋나 있는게 골절이 분명하다.
부지런히 홍천 아산병원으로 이송하고 ~~
뒤이어 계방산에
저체온증 남자와 팔목 골절 여자 환자 구조를 위해 이동.
남자의 경우 1월1일 상황과 동일한 저체온 증상이고,
(복장은 제대로 갖추고 있다. 아이젠까지)
여자 1명이 팔목 골절인 듯 한데 운동화에 츄리닝 차림이다.
계방산이면 고도 5000feet(1500m) 내외인데~~
참말이지 좀 심하다 싶다.
팔목 골절 부위의 통증이 너무심해
구조대원들이 응급처치도 못하게 비명을 질러대는데
부상당한 부분을 잠바로 둘둘 말고 있는 모습이 안스럽다.
등산로엔 바람에 날려온 눈이 20cm는 넘게 쌓여있는데 그 차림새로 우쩌자고~
저체온증 남자의 부인도 보호자 자격으로 같이 탑승했는데
이 부인도 서방님 대신 구조대원에게 이런저런 경위를 설명하다
마지막엔 팔목골절된 아줌씨한테 한마디 쏴 붙이더란다.
"복장 제대로 갖추고 등산하라고~"
같은 장소에서 헬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일행은 아닌 듯하더라는데
요즘 왠만한 산 정상의 체감온도는 영하 20~30도 .
중년나이에 넘어지면 부러지고, 산위에서는 제대로된 응급처치를 받을 수도 없는데
그리고 최소 2시간은 추위와 싸울 각오를 해야 할텐데.
그 모든 것 무시하고, 오늘도 무리하게 산에 오르는 사람들 있을 게다.